카라의 조직변화와 새로운 도전
[2002.04.15] 아름품 창립, WITHANIMAL.NET 오픈

KARA 초대 대표 강은엽 교수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88올림픽을 계기로 제정되었다. 당시 IFAW 등 해외 동물단체들은 올림픽 개최를 한국의 개식용문제 해결의 중요한 계기로 여겨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였고 한국 내에서 개식용문제를 다룰 파트너를 찾았다. 당시 한국에는 초기 결성 단계였던 대구 동물보호협회 이외에 동물보호단체가 없었다. 이때 정부는 해외의 비난을 무마용으로 12개 조문으로 구성된 선언적 동물보호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개 도살을 제어하기 위한 학대 금지 조항, , 개를 목매달아 죽이거나 공개된 장소에서 동물을 죽이는 경우 처벌하겠다는 법조문은 현실에서 무용지물이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당시 초선 국회의원이었던 김홍신은 개고기민족주의를 부추겨 여론몰이하며 개고기합법화를 주장했다.

당시 상황은 개고기반대자들이 절대 열세였다. 그들은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아름품은 2002년 다양한 직업적 배경을 가진 9인의 개식용 반대론자들이 모여 결성했다. 우리 사회의 반려동물에 대한 낙후된 인식을 개선하지 않는 한, 학대받는 개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없고 개식용문제 해결은 어림없다는 판단에 캠페인에 주력하기로 했다. 애니멀호더 포함한 학대대응, 유기동물의 구조 입양은 물론, 개식용반대 동영상제작이나 언론대응 오프라인 캠페인을 활발한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전개했다. 이 모든 활동이 오직 운영진을 중심으로 한 순수 자원봉사와 기금 출연 그리고 소수 회원의 회비로 이뤄졌다. 아름품 거둠부는 현장에서 동물들에게 구조 입양 보호로 손을 내밀었고, 나눔부는 지식과 캠페인 나눔으로 시민들에게 연대를 요청했다. 웹제작자, 광고전문가, 디자이너, 수의사, 시민단체 활동가, 사업가들이 힘을 합쳐 아름품을 일궜다. 회원 가정에서 모여 밤을 새우며 전략을 논의하고, 구조한 동물을 살리기 위해 밤새 병원을 전전하면서도 목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름품 활동을 전개하면서 사회 명망가의 참여가 절실하던 시점에, 강은엽 교수님을 대표로 모셔올 수 있었다. 강은엽 교수님은 카라 활동 지원을 위해 무료로 사무실도 내 주셨다. 1인의 간사를 두고 아름품의 꿈을 일구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비영리단체 승인도 얻었다. 모든 일이 회원들의 희생적 자원봉사로 이뤄졌다. 적극적인 구조 입양 활동과 애니멀호더 대응 활동, 동물보호법 개정 활동, 개식용반대 및 동물권 증진을 위한 온·오프라인 캠페인 사설보호소 봉사 활동과 나눔정원 활동이 오직 자발적 헌신에 의해 전개되었다. 그러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국무조정실의 식용개위생관리방안 정책연구와 동물보호법에서 식용개를 소외시키는 실질적인 개고기 합법화 시도가 있었다. 어떤 수를 써서든 막아야만 할 상황에서 카라는 아름품이라는 정든 이름을 버리고 동물권을 표방한 현재의 영문 단체명으로 개명했다. 더욱 강력한 활동을 천명하고 해외에도 한국 동물보호단체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비영리법인 KARA 승인 : 대표 인사말] 

이 땅에 동물보호운동이 아직은 뿌리내리지 못했던 2002년 4월 15일,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약자인 동물들의 고통을 대변하여 주려는 이들이 모여 “아름품”을 설립하였습니다. 

아직은 전문적이지 못 했으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아름품은 5000여 회원들의 힘을 모아 많은 활동을 해 왔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낙후된 생명존중의식의 제고를 위한
인식전환 캠페인에 주력하며, 올바른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연구와 제안, 다양한 개 식용반대캠페인, 실험동물 반대, 농장동물의 복지증진, 오락동물의 반대, 기타 채식문화 운동을 전개하여 왔습니다.


하지만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자들의 희생과 봉사에 기대어 대부분의 활동이 이어져 온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우리의 목적에 다가가기에는 어려운점이 많았습니다.
이에 2006년을 맞이하여 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목적하는 동물보호활동을 위해 '동물과 함께 하는 시민들의 모임(Korea Animal Rights Advocates)' “카라”로 비영리단체 등록을 하고 보다 강력하고 효율적인 
동물보호활동의 발판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후미진 구석에서, 실험실에서, 농장에서, 인간의 탐욕과 그릇된 생명경시 풍조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동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읍니다.  그러나 말 못하는 동물들은 자신의 처참한 고통을 호소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에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이들은 힘을 합하여 이들의 생명권을 지켜주고 그들의 소리를 대변해 주고자 이렇게 모였습니다.

여러 세기를 통해 이 지구상에 존재하여 오던 인권과 생명의 유린 행태는 이제 하나씩 사라져 가게 되었습니다.  노예해방과 여성해방이 그 결과 입니다. 
우리나라도 2005년 호주제 폐지의 통과로 드디어 법적으로도 여성이 평등한 인간으로 대접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지구상에 또 하나의 약자인 동물들에게 그들의 타고난 본연의 모습으로
인류와 공존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카라”는 앞으로 이와 같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목표를 가지고 여러분들과 함께 일해 나갈 것을 약속 드립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 아름다운 생명사랑의 대열에 모두 합류하여 인간과 동물이 아름답게
공존하며 동물들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우리 이웃들이 모두 깨닫게 되어 동물에 대한 학대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카라"와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희생적인 자원 활동에도 불구하고, 단체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는 늘어만 갔다. 한계 상황에서 단체의 기틀을 잡고 외연을 넓히며 우리 사회에 동물권을 정착시킬 특별 조치가 필요했다. 설득 끝에 당시 활발한 동물보호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임순례 감독님을 대표로 영입할 수 있었다. 임순례 대표와 강은엽 명예대표 체제에서 카라는 법인의 자격을 획득하고, 당시 아름다운재단 대표였던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 디자이너 안상수, 김홍남(국립박물관장), 최재천 교수를 비롯한 사회 저명인사들이 카라 명예이사로 결합했다. 전임 활동가들 중심의 사무국 체제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진행해 오던 자원 활동과 전임활동가들의 협업도 계속되었다. 우리나라 동물보호 활동의 역사가 짧고 축적된 정책 활동이나 활동가 교육의 기회가 없다 보니 전임 활동가들의 채용부터 역할설정 업무 진행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한편 개식용반대 인구의 저변 확대와 동물실체적 운동은 시민운동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서 시민사회에 빠르게 자리 잡게 되었다.

여러 동물단체가 생성되었으나 단체별 활동 내용은 비슷했다. 이때 카라는 서교동 더불어숨 센터에서 좀 더 크고 근본적인 동물권 증진 활동을 시작했다. 새로운 조직과 활동 영역을 설정하고 동물전문도서관, 입양카페 아름품, 카라 동물병원에서 시민들과 활동의 접점을 늘리는 활동을 시작했다. 동물보호단체로서의 전문성을 확대 심화하는 한편 법과 제도에서 동물권 확장을 도모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영입과 연대 활동에도 주력했다. 2013년 카라와 녹색당 동변(구 생명권네트워크 변호인단)2013 동물복지법이나 2015년 공장식축산헌법소원은 연대활동의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현재 카라는 전임 활동가 30, 후원회원 1만인 이라는 작지 않은 조직으로 성장했다. 아름품 거둠부와 나눔부에서 수행하던 역할은 사무국과 정책국 편제를 거쳐 현재는 4개의 팀과 입양카페 아름품, 도서관,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대규모 조직이 되었다. 조직 발전을 위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조직의 수행능력 배양과 체질 강화, 시민사회화의 연대 강화와 자원 활동 연계방안 시민지원 등 개발하고 체계화해야 할 일들이 이뤄 낸 일보다 더 많다.

현재 카라는 아름품 - 비영리단체 카라 - 서교동 더불어숨 센터를 거쳐 동물보호의 지형을 바꾸기 위한 동물복지센터 건립이라는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는 더 큰 도전을 위해 카라는 지금 항해를 준비하며 조직을 정비 중이다. 여러 자원봉사자의 희생, 유명인, 전문가들의 조력, 회원들의 말 없는 지지, 그리고 활동가들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여기까지 왔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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