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위령제]누렁이 헌정시 - 누렁아, 미안해!

[누렁이위령제]누렁이 헌정시 - 누렁아, 미안해! 

제목 : [누렁이위령제]누렁이 헌정시 - 누렁아, 미안해!


게시글 : 한밤중에 어디선가 누렁이의 애타는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아침이 되면 또 누구 집의 누렁이가 트럭에 실려갔다는 쓸쓸한 소식이 들릴 것입니다. 정섭이 아저씨의 누렁이였군요. 정섭이 아저씨가 집에 돌아올 시간이면, 어김없이 골목 어귀까지 나가 기다리던 누렁이. 비가 내려도, 돌을 맞아도, 비석처럼 기다리던 누렁이. 누렁이에게 정섭이 아저씨는 아버지였습니다. 누렁이는 아버지의 뜻이라, 선선히 트럭에 오르면서도, 왜 아버지가 자신을 보내는지 그 까닭을 알지 못해, 그래서 울었습니다. 누렁아, 미안해. 우리는 그 까닭을 설명해 줄 수가 없구나. 트럭을 타고 도착한 곳엔 친구들이 많습니다. 다리를 절룩이는 누렁이, 눈에 피멍이 든 누렁이, 배에 상처가 너무 깊어 숨쉬기조차 고통스런 누렁이, 며칠 동안 물을 먹지 못해 갈증에 시달리는 누렁이. 그러나, 제일 가여운 누렁이는 추억이 없는 누렁이입니다. 우리에서 태어나, 우리에서 자라고, 우리 밖으론 어제 처음으로 나와, 이곳에 왔다는 누렁이. 우리에서 태어난 누렁이가 피곤한지 기대어옵니다. 정섭이 아저씨 누렁이는 기꺼이 어깨를 내어줍니다. 내겐 추억이라도 있으니 그것으로 족해. 정섭이 아저씨 누렁이는 살그머니 눈을 감습니다. 다시 눈을 뜨면, 아버지가 와 있을까요. 아버지도 나처럼 나를 그리워할까요. 누렁아, 미안해. 우리는 어떤 대답도 해 줄 수가 없구나. 두려웠던 짧은 여행은 끝나갑니다. 허리춤에 지갑을 낀 아주머니가 정섭이 아저씨 누렁이를 손가락질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태연하려 해도, 다리가 떨리고 온몸이 굳습니다. 살고싶습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싶습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자신을 끌고 가는 아저씨를 물고 도망칠까도 생각해보지만, 천성적으로 그러질 못합니다. 사람을 미워해 본 적이 한번도 없으니까요. 정섭이 아저씨 누렁이는 이제 천천히 세상을 떠나갑니다. 황혼 속에서, 아버지가 따사롭게 웃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나의 몸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누렁아, 미안해. 너의 몸이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한숨과 눈물로 밖에 알려주지 못하겠구나. 누렁아, 이젠 아름다운 별이 되거라.

지은이 : 김시은


게시자 : ohryuken; 맑은영혼


게시일자 : 200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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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번호 : pipi-435


제목 : [누렁이위령제]누렁이 헌정시 - 누렁아, 미안해!


형식 : 구서버


게시글 : 한밤중에 어디선가 누렁이의 애타는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아침이 되면 또 누구 집의 누렁이가 트럭에 실려갔다는 쓸쓸한 소식이 들릴 것입니다. 정섭이 아저씨의 누렁이였군요. 정섭이 아저씨가 집에 돌아올 시간이면, 어김없이 골목 어귀까지 나가 기다리던 누렁이. 비가 내려도, 돌을 맞아도, 비석처럼 기다리던 누렁이. 누렁이에게 정섭이 아저씨는 아버지였습니다. 누렁이는 아버지의 뜻이라, 선선히 트럭에 오르면서도, 왜 아버지가 자신을 보내는지 그 까닭을 알지 못해, 그래서 울었습니다. 누렁아, 미안해. 우리는 그 까닭을 설명해 줄 수가 없구나. 트럭을 타고 도착한 곳엔 친구들이 많습니다. 다리를 절룩이는 누렁이, 눈에 피멍이 든 누렁이, 배에 상처가 너무 깊어 숨쉬기조차 고통스런 누렁이, 며칠 동안 물을 먹지 못해 갈증에 시달리는 누렁이. 그러나, 제일 가여운 누렁이는 추억이 없는 누렁이입니다. 우리에서 태어나, 우리에서 자라고, 우리 밖으론 어제 처음으로 나와, 이곳에 왔다는 누렁이. 우리에서 태어난 누렁이가 피곤한지 기대어옵니다. 정섭이 아저씨 누렁이는 기꺼이 어깨를 내어줍니다. 내겐 추억이라도 있으니 그것으로 족해. 정섭이 아저씨 누렁이는 살그머니 눈을 감습니다. 다시 눈을 뜨면, 아버지가 와 있을까요. 아버지도 나처럼 나를 그리워할까요. 누렁아, 미안해. 우리는 어떤 대답도 해 줄 수가 없구나. 두려웠던 짧은 여행은 끝나갑니다. 허리춤에 지갑을 낀 아주머니가 정섭이 아저씨 누렁이를 손가락질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태연하려 해도, 다리가 떨리고 온몸이 굳습니다. 살고싶습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싶습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자신을 끌고 가는 아저씨를 물고 도망칠까도 생각해보지만, 천성적으로 그러질 못합니다. 사람을 미워해 본 적이 한번도 없으니까요. 정섭이 아저씨 누렁이는 이제 천천히 세상을 떠나갑니다. 황혼 속에서, 아버지가 따사롭게 웃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나의 몸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누렁아, 미안해. 너의 몸이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한숨과 눈물로 밖에 알려주지 못하겠구나. 누렁아, 이젠 아름다운 별이 되거라.

지은이 : 김시은


게시자 : ohryuken; 맑은영혼


게시일자 : 2002-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