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감독님-개들도 우리처럼

임순례 감독님-개들도 우리처럼 

제목 : 임순례 감독님-개들도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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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 이야기] 개들도 우리처럼!
날짜
   2005년05월21일
조회수
37
 

























[한겨레] 영화감독 임순례의 특별한 러브스토리… 재롱이·태백이를 떠올리며 유기견 구조에 나서다

▣ 임순례/ 영화감독
풍경 하나. 어린 시절 불콰한 웃음들의 술안주로

1960년대 후반 인천의 한 변두리 마을의 어느 오후, 한 초등학교 여자아이가 하교 중이다. 동네어귀에서 아이를 발견한 개 한 마리가 컹컹 짖으며 아이를 향해 달음질친다. 그 뒤를 이어 온 동네 개들이 합세해 달려나오고…. 어린 시절의 내 하굣길 풍경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개에 관한 추억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집 앞 개울가에 동네 아저씨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커다란 가마솥이 걸리는 날이면, 한 생명이 내지를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단말마의 비명이 어김없이 들려왔다. 나뭇가지에 목매달려 버둥대는 개의 몸에 사정없는 몽둥이 찜질이 가해지고, 비명이 잦아들면 개는 끌어내려져 불에 까맣게 그슬린 다음, 익숙한 칼질로 뼈와 살이 발라진다. 어제까지 나와 즐겁게 뛰어놀던 누렁이, 독구, 메리, 쫑은 아저씨들의 거나하고 불콰한 웃음소리에 묻혀 한점 술안주로 사라지고 만다. 죽어가는 개의 처참하게 슬픈 눈동자, 그것을 저지할 힘이 없는 무력감 그리고 남의 고통에 인간이 그다지도 둔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린 영혼에 깊은 상처로 각인돼 남는다.

풍경 둘. 재롱이
연탄가스에서 날 구해준 ‘칸트’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무위도식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작고 귀여운 발바리 강아지 한 마리가 집에 오게 되었다. ‘재롱이’라는 이름의 이 강아지가 어찌나 영리한지, 이때부터 나는 발바리가 지구상 모든 견종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센스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 뒤 대학에 다니게 된 나는 거의 매일 일정한 시간에 귀가를 했는데, 어머니가 혹여 시간을 잊어버리는 경우는 있어도 재롱이는 칸트만큼 정확한 시간 감각을 자랑하며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오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무렵 어느 겨울날 한밤중,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재롱이는 여느 때처럼 내 방문 앞 부뚜막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재롱이가 평소와는 다른 소리로 끙끙대는 것을 듣고 아버지가 잠이 깨셨고, 내 방문 틈에 코를 박고 낑낑대는 재롱이를 이상히 여겨 내 이름을 불렀으나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해 이미 인사불성이 된 나는 응답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밖으로 나와보시는 바람에 그날 나는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재롱이의 맹활약 덕분으로 나는 다소의 뇌세포 파괴까지는 피해갈 순 없었지만, 동치미 국물 한 사발로 원기를 회복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다.

풍경 셋. 태백이
우리에게 ‘리콜’은 없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들고 나서 갑자기 개를 키우고 싶어졌다. 그간 생활이 불규칙한 직업적 특성과 맞물려 오랫동안 개를 키울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개들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면서 마음이 갑자기 조급해졌다.

실외에서 키우는 개를 선호하는 나는 마당 있는 싼 전셋집을 찾아 남양주의 교외로 나갔고 4개월령 진돗개 수컷 태백이를 맞아들였다. 보통 5~6개월이면 귀가 서게 마련인데 태백이는 7개월이 다 되도록 귀가 설 줄을 몰랐고 과묵함이 지나쳐 외부인을 보고도 잘 짖지 않았다. 태백이를 구입한 진돗개 농장주에게 전화로 상담했더니, 그는 ‘리콜’이라는 표현을 선심 쓰듯 말했다.

나는 “그럼 태백이는 어찌 되는가”라고 물었고, “귀가 안 서는 아이들은 진돗개로서 자격 미달이므로 고깃값을 받고 도태시킨다”고 했다. 영리하고 듬직한 멋진 진돗개를 키워보려는 나의 꿈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나는 더없이 착한 성품의 태백이와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귀가 좀 안 섰다고 이 세상을 살 자격이 없다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으므로….

남양주 시절은 태백이의 화양연화였다. 집 뒤가 바로 야산이라 언제든 자유롭게 뛰어놀았고, 시골동네에선 미남축에 속하는지라 암컷들의 구애 공세는 끊이질 않았다. 당연한 결과로 그 동네에 새로 태어난 강아지들 대부분은 귀가 반쯤 접혀 있었다. 언제나 지극한 행복은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법. 갑자기 전셋집이 팔렸고 2년 만에 다시 보따리를 싸야 했다. 좁지만 마당이 딸린 서울 성북동으로 집을 옮겼는데, 태백이에겐 하루 한두번의 짧은 산책으로 만족해야 하는 서울 생활은 감옥살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개를 가둬놓고 키우는 서울의 주택가에서 태백이가 암컷과 연애를 할 기회는 단 한번도 없었다.

보다 못한 나는 드디어 태백이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 빚을 내서라도 시골에 자그만한 집을 짓기로. 땅을 보러 다닌 지 몇달 만에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계약금을 걸고 온 그날, 태백이는 가출을 했다. 평소에는 애교가 없는 무뚝뚝한 녀석인데 그날은 유난히 애교를 떨며 ‘마치 그간 고마웠어요’라고 마음의 말을 대신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태백이의 자발적 가출로 생각하고 있다. 사랑받는 ‘감옥’ 대신 빈궁한 ‘자유’를 선택한 태백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땅 구입 사실을 얘기해주었다면 가출을 안 했을까?

풍경 넷. 소진이
‘웃는 진도’가 슬픔을 덜어주네


태백이가 가출한 뒤 열흘 정도 지났을 때였다. 실종 전단지 속 태백이와 비슷한 백구가 지금 전철역 근처 큰길에서 헤매고 있으니 빨리 와서 보라는 제보가 빗발쳤으나, 부산 가는 고속철도(KTX) 열차 안에 있던 나는 마음만 조급할 뿐이었다. 근처에 있는 후배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태백이가 아님을 확인했지만, 왕복 4차선 도로에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그 개를 구조하려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고 후배가 전해왔다. 일단은 119에 협조를 구해 구조하라고 했고, 후배의 구조 유도에 순순히 응했을 뿐만 아니라 미소까지 지었다는, 약간은 믿기 힘든 행동으로 인해, ‘웃는 진도’라는 뜻의 ‘소진’이라는 새 이름을 얻으면서 그 아이는 우리 집의 새 식구가 되었다.

나는 태백이가 자신은 자유를 택하고 대신 자신의 빈자리에 소진이를 보내어 나의 슬픔을 달래려 한 것이라 억지로 위무하면서 슬픔의 무게를 덜고 있는 중이다.

풍경 다섯. 누리네 세 자매
얘들아, 마취총을 원망하지마


성북동에서 알던 유기견 가족이 있었다. 유기된 부모견 사이에서 한 겨울에 세 강아지가 태어나 다섯 식구로 불었는데, 봄이 되자 텃밭도 망치고 아이들에게 위협적이라면서 인근 주민들의 원성 수위가 부쩍 높아졌다. 그들은 먹이를 공급하는 내게 불만을 터트리고 드디어 쥐약을 놓아 독살하겠다는 최후 통첩이 전달됐다.

더 이상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일단 이 가족을 구조하기로 했고 오랜 노숙 생활에 지친 부모견은 음식물에 섞은 진정제의 약효가 쉽게 발효돼 인근 모처로 이주시켰으나, 세 자매는 부모로부터 전수받은 은닉술과 환경이 만들어준 태생적 경계심으로 인해 여간해선 잡히질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세 마리 중 맏언니 격인 누리가 마취총에 맞아 구조됐다. 누리는 구조되긴 했지만 당시에 내가 키우긴 어려운 상황이었고, 입양도 성사되지 못해 결국 사설 보호소로 보내졌다. 동구협에 보내면 한달 안에 안락사를 당할 처지이므로 열악하지만 사설 보호소에 보내지게 된 것조차 행운으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었다. 덩그러니 둘만 남은 얼리와 설리는 주민들의 모진 구박을 견디며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는데,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상황이 닥쳐 구조가 긴급해져다. 그냥 두면 기아에 허덕이게 됨은 물론이고 두 암컷이 번갈아 출산을 하게 되면 주민들로부터 위협의 강도가 강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한 끝에 <한겨레21>로부터 구조 전문가를 소개받아 구조에 착수했다. 너무도 영리한 녀석들의 반응에 구조 전문가도 혀를 내두르고 서서히 지쳐갈 무렵 유인책으로 데려간 소진의 맹활약으로 두 마리 중 하나인 얼리를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새 집에 데리고 온 얼리는 원망이 그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며칠간 굶었을텐데도 먹이엔 입도 대지 않는다. 누리도 예전엔 같은 눈빛으로 나를 ‘원망’했다. 마당이 넓어진 나는 며칠 뒤 누리를 데려올 예정이다. 설리의 구조 일정도 잡혀 있다. 세 자매가 조우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인간과 지구를 나눠쓰는 생명체, 동물

나는 동물을 지구를 인간과 나눠쓰는 동등한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제인 구달은 이렇게 말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숭고한 본성이다.” 간디는 “동물을 대우하는 그 나라 사람의 의식 수준이 그 나라 사람의 정신적 수준을 가늠케 한다”고 했다는 글을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한국은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으로서 살아가기가 힘든 나라이지만, 동물로서 한국에서 살아내기란 정말로 만만치 않다. 까치밥을 남겨놓고 미생물을 보호하려 뜨거운 물조차 수채 구멍에 함부로 붓지 않았던 우리 조상들의 관대하고도 섬세한 생명존중 사상은 얼마나 멋진 일이던가?



[한겨레21]

 


게시자 : kittenm; 최성희; kittenm@hanmail.net


게시일자 : 2005-05-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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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임순례 감독님-개들도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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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 이야기] 개들도 우리처럼!
날짜
   2005년05월21일
조회수
37
 

























[한겨레] 영화감독 임순례의 특별한 러브스토리… 재롱이·태백이를 떠올리며 유기견 구조에 나서다

▣ 임순례/ 영화감독
풍경 하나. 어린 시절 불콰한 웃음들의 술안주로

1960년대 후반 인천의 한 변두리 마을의 어느 오후, 한 초등학교 여자아이가 하교 중이다. 동네어귀에서 아이를 발견한 개 한 마리가 컹컹 짖으며 아이를 향해 달음질친다. 그 뒤를 이어 온 동네 개들이 합세해 달려나오고…. 어린 시절의 내 하굣길 풍경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개에 관한 추억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집 앞 개울가에 동네 아저씨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커다란 가마솥이 걸리는 날이면, 한 생명이 내지를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단말마의 비명이 어김없이 들려왔다. 나뭇가지에 목매달려 버둥대는 개의 몸에 사정없는 몽둥이 찜질이 가해지고, 비명이 잦아들면 개는 끌어내려져 불에 까맣게 그슬린 다음, 익숙한 칼질로 뼈와 살이 발라진다. 어제까지 나와 즐겁게 뛰어놀던 누렁이, 독구, 메리, 쫑은 아저씨들의 거나하고 불콰한 웃음소리에 묻혀 한점 술안주로 사라지고 만다. 죽어가는 개의 처참하게 슬픈 눈동자, 그것을 저지할 힘이 없는 무력감 그리고 남의 고통에 인간이 그다지도 둔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린 영혼에 깊은 상처로 각인돼 남는다.

풍경 둘. 재롱이
연탄가스에서 날 구해준 ‘칸트’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무위도식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작고 귀여운 발바리 강아지 한 마리가 집에 오게 되었다. ‘재롱이’라는 이름의 이 강아지가 어찌나 영리한지, 이때부터 나는 발바리가 지구상 모든 견종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센스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 뒤 대학에 다니게 된 나는 거의 매일 일정한 시간에 귀가를 했는데, 어머니가 혹여 시간을 잊어버리는 경우는 있어도 재롱이는 칸트만큼 정확한 시간 감각을 자랑하며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오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무렵 어느 겨울날 한밤중,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재롱이는 여느 때처럼 내 방문 앞 부뚜막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재롱이가 평소와는 다른 소리로 끙끙대는 것을 듣고 아버지가 잠이 깨셨고, 내 방문 틈에 코를 박고 낑낑대는 재롱이를 이상히 여겨 내 이름을 불렀으나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해 이미 인사불성이 된 나는 응답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밖으로 나와보시는 바람에 그날 나는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재롱이의 맹활약 덕분으로 나는 다소의 뇌세포 파괴까지는 피해갈 순 없었지만, 동치미 국물 한 사발로 원기를 회복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다.

풍경 셋. 태백이
우리에게 ‘리콜’은 없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들고 나서 갑자기 개를 키우고 싶어졌다. 그간 생활이 불규칙한 직업적 특성과 맞물려 오랫동안 개를 키울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개들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면서 마음이 갑자기 조급해졌다.

실외에서 키우는 개를 선호하는 나는 마당 있는 싼 전셋집을 찾아 남양주의 교외로 나갔고 4개월령 진돗개 수컷 태백이를 맞아들였다. 보통 5~6개월이면 귀가 서게 마련인데 태백이는 7개월이 다 되도록 귀가 설 줄을 몰랐고 과묵함이 지나쳐 외부인을 보고도 잘 짖지 않았다. 태백이를 구입한 진돗개 농장주에게 전화로 상담했더니, 그는 ‘리콜’이라는 표현을 선심 쓰듯 말했다.

나는 “그럼 태백이는 어찌 되는가”라고 물었고, “귀가 안 서는 아이들은 진돗개로서 자격 미달이므로 고깃값을 받고 도태시킨다”고 했다. 영리하고 듬직한 멋진 진돗개를 키워보려는 나의 꿈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나는 더없이 착한 성품의 태백이와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귀가 좀 안 섰다고 이 세상을 살 자격이 없다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으므로….

남양주 시절은 태백이의 화양연화였다. 집 뒤가 바로 야산이라 언제든 자유롭게 뛰어놀았고, 시골동네에선 미남축에 속하는지라 암컷들의 구애 공세는 끊이질 않았다. 당연한 결과로 그 동네에 새로 태어난 강아지들 대부분은 귀가 반쯤 접혀 있었다. 언제나 지극한 행복은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법. 갑자기 전셋집이 팔렸고 2년 만에 다시 보따리를 싸야 했다. 좁지만 마당이 딸린 서울 성북동으로 집을 옮겼는데, 태백이에겐 하루 한두번의 짧은 산책으로 만족해야 하는 서울 생활은 감옥살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개를 가둬놓고 키우는 서울의 주택가에서 태백이가 암컷과 연애를 할 기회는 단 한번도 없었다.

보다 못한 나는 드디어 태백이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 빚을 내서라도 시골에 자그만한 집을 짓기로. 땅을 보러 다닌 지 몇달 만에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계약금을 걸고 온 그날, 태백이는 가출을 했다. 평소에는 애교가 없는 무뚝뚝한 녀석인데 그날은 유난히 애교를 떨며 ‘마치 그간 고마웠어요’라고 마음의 말을 대신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태백이의 자발적 가출로 생각하고 있다. 사랑받는 ‘감옥’ 대신 빈궁한 ‘자유’를 선택한 태백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땅 구입 사실을 얘기해주었다면 가출을 안 했을까?

풍경 넷. 소진이
‘웃는 진도’가 슬픔을 덜어주네


태백이가 가출한 뒤 열흘 정도 지났을 때였다. 실종 전단지 속 태백이와 비슷한 백구가 지금 전철역 근처 큰길에서 헤매고 있으니 빨리 와서 보라는 제보가 빗발쳤으나, 부산 가는 고속철도(KTX) 열차 안에 있던 나는 마음만 조급할 뿐이었다. 근처에 있는 후배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태백이가 아님을 확인했지만, 왕복 4차선 도로에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그 개를 구조하려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고 후배가 전해왔다. 일단은 119에 협조를 구해 구조하라고 했고, 후배의 구조 유도에 순순히 응했을 뿐만 아니라 미소까지 지었다는, 약간은 믿기 힘든 행동으로 인해, ‘웃는 진도’라는 뜻의 ‘소진’이라는 새 이름을 얻으면서 그 아이는 우리 집의 새 식구가 되었다.

나는 태백이가 자신은 자유를 택하고 대신 자신의 빈자리에 소진이를 보내어 나의 슬픔을 달래려 한 것이라 억지로 위무하면서 슬픔의 무게를 덜고 있는 중이다.

풍경 다섯. 누리네 세 자매
얘들아, 마취총을 원망하지마


성북동에서 알던 유기견 가족이 있었다. 유기된 부모견 사이에서 한 겨울에 세 강아지가 태어나 다섯 식구로 불었는데, 봄이 되자 텃밭도 망치고 아이들에게 위협적이라면서 인근 주민들의 원성 수위가 부쩍 높아졌다. 그들은 먹이를 공급하는 내게 불만을 터트리고 드디어 쥐약을 놓아 독살하겠다는 최후 통첩이 전달됐다.

더 이상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일단 이 가족을 구조하기로 했고 오랜 노숙 생활에 지친 부모견은 음식물에 섞은 진정제의 약효가 쉽게 발효돼 인근 모처로 이주시켰으나, 세 자매는 부모로부터 전수받은 은닉술과 환경이 만들어준 태생적 경계심으로 인해 여간해선 잡히질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세 마리 중 맏언니 격인 누리가 마취총에 맞아 구조됐다. 누리는 구조되긴 했지만 당시에 내가 키우긴 어려운 상황이었고, 입양도 성사되지 못해 결국 사설 보호소로 보내졌다. 동구협에 보내면 한달 안에 안락사를 당할 처지이므로 열악하지만 사설 보호소에 보내지게 된 것조차 행운으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었다. 덩그러니 둘만 남은 얼리와 설리는 주민들의 모진 구박을 견디며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는데,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상황이 닥쳐 구조가 긴급해져다. 그냥 두면 기아에 허덕이게 됨은 물론이고 두 암컷이 번갈아 출산을 하게 되면 주민들로부터 위협의 강도가 강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한 끝에 <한겨레21>로부터 구조 전문가를 소개받아 구조에 착수했다. 너무도 영리한 녀석들의 반응에 구조 전문가도 혀를 내두르고 서서히 지쳐갈 무렵 유인책으로 데려간 소진의 맹활약으로 두 마리 중 하나인 얼리를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새 집에 데리고 온 얼리는 원망이 그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며칠간 굶었을텐데도 먹이엔 입도 대지 않는다. 누리도 예전엔 같은 눈빛으로 나를 ‘원망’했다. 마당이 넓어진 나는 며칠 뒤 누리를 데려올 예정이다. 설리의 구조 일정도 잡혀 있다. 세 자매가 조우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인간과 지구를 나눠쓰는 생명체, 동물

나는 동물을 지구를 인간과 나눠쓰는 동등한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제인 구달은 이렇게 말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숭고한 본성이다.” 간디는 “동물을 대우하는 그 나라 사람의 의식 수준이 그 나라 사람의 정신적 수준을 가늠케 한다”고 했다는 글을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한국은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으로서 살아가기가 힘든 나라이지만, 동물로서 한국에서 살아내기란 정말로 만만치 않다. 까치밥을 남겨놓고 미생물을 보호하려 뜨거운 물조차 수채 구멍에 함부로 붓지 않았던 우리 조상들의 관대하고도 섬세한 생명존중 사상은 얼마나 멋진 일이던가?



[한겨레21]

 


게시자 : kittenm; 최성희; kittenm@hanmail.net


게시일자 : 2005-05-22 16:26